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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든 한 권

고풍 세태 장편소설

돌아간 표지판

쿠우지 · AI 창작 · 4270 자 · 약 11 분

천성은 약방 뒤쪽 툇마루에서 아홉 밤을 묵었다. 처음에는 물건을 확인하고 곧 돌아갈 생각이었다. 마침 저우퉁이 뒤뜰을 비우려던 참이라 며칠 나무 상자를 옮기는 일을 맡겼다. 품삯은 먼 길을 가는 것보다 적지 않았고 잘 곳도 따로 구할 필요가 없었다. 사흘 일하고 이틀을 더 했으며, 나중에는 고향으로 대신 가져다줄 대나무 조각과 자질구레한 물건을 기다리느라 사흘을 더 머물렀다. 낮에는 뒤뜰의 물건을 봐주고 품삯은 따로 받지 않았다. 조금씩 두툼해지는 돈주머니를 만져 보니 깨진 단지 열두 개 외에도 이번 길에서 남은 것이 생겼다 싶었다.

아흐레째 밤이 되자 형이 사람을 시켜 전한 말도 도착했다. 칭란까지 가는 길이 그리 멀어 돌아서는 데도 한 달이 걸리느냐고 했다. 천성은 말을 확인하고 곧 짐을 쌌다. 성안에서 오래 일할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밤마다 점원들이 자기보다 훨씬 친숙하게 농담을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고, 어느 상자를 먼저 놓아야 할지도 누가 일러 주기를 기다려야 했다. 정말 날마다 이렇다면 결국 제 것이 아닌 멜대 하나로 바꿔 메는 셈이었다.

천성은 읍내를 나올 때 대나무 조각 두 묶음과 깨끗한 천 자루 하나, 그리고 받을 사람의 이름이 분명히 정해진 자잘한 물건 한 꾸러미를 부탁받아 가져왔다. 저우퉁은 나중에 약방 뒤뜰을 고칠지도 모르는데, 솜씨 좋은 목수가 나서서 맡아 주면 마음이 놓일 거라고 했다. 천성은 쉬선을 거론하며, 그날 밤 문이 가볍게 밀기만 해도 잘 닫혔다고 한숨에 칭찬을 늘어놓았다. 저우퉁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앞으로 물건을 전부 그에게 맡기겠다고 바로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천성은 다음에 올 길에 벌써 기대를 조금 더 얹어 두었다.

십팔일에는 날이 맑았다. 길가의 눈은 얇아졌으나 발밑 진흙 탓에 오히려 걷기가 더 어려웠다. 천성은 물웅덩이를 만날 때마다 바구니를 받치는 손을 바꿨다. 막 기운 신에 또 진흙이 들어가는 게 싫었다. 그는 돈을 주고 삼실을 작은 타래로 하나 샀으면서도 낡은 짐끈은 끊어진 자리에 두어 바퀴 더 감았을 뿐이었다. 가오푸에 돌아가면 아무래도 자기보다 형이 더 잘 엮을 거라고 생각했다. 새것 한 벌의 값도 물어보았지만, 묻고 나서는 일단 돈을 다시 챙겨 넣었다.

회화나무 갈림길에 이르자 새 표지판이 나무 밑에 없었다. 천성은 처음에는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멈추어 양쪽을 살폈다. 삼나무도 도랑 어귀도 오래된 수레바퀴 자국도 그대로였다. 표지판은 갈림길에서 열 걸음 남짓 떨어진 저우차오의 오두막 옆에 있었다. 아래에는 돌 하나가 받쳐져 반듯했고 글자도 빠진 것이 없었다. 큰길을 따라 북쪽에서 오면 멀리서도 잘 보였지만, 그날 밤의 천성처럼 동쪽에서 더듬어 나오면 하필 오두막 처마 귀퉁이에 가렸다.

저우차오는 문가에 앉아 무를 깎고 있었다. 천성을 보고 웃으며 이번에는 린씨네 집으로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천성은 바로 따지지 않고 먼저 팻말이 왜 여기 와 있느냐고 물었다. 저우차오는 나무 밑에 눈이 녹아 진흙탕이 되었고 팻말 밑동까지 물에 잠길 판이라 조금 더 마른 곳으로 옮겼다고 했다. 이렇게 잘 세워 놓았는데 설마 남들이 누구 한 사람의 눈에 맞춰 길을 가야 하느냐고도 했다.

천성은 짐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여 돌을 보았다. 판이 망가진 것도 아니고 저우차오가 다른 이름을 써 넣은 것도 아니었다. 그가 일부러 손님을 먼 길로 돌렸다고 말한다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들어 사람을 몰아붙이는 꼴이었다. 하지만 몇 걸음만 뒤로 물러서면 화살표가 대체 어느 길을 가리키는지 다시 모호해졌다. 그가 한 번 자리를 옮겨 보자 저우차오는 무를 깎던 작은 칼로 가리키며 판 모서리 조심하라고, 손님 다리를 치지 말라고 했다.

두 사람이 갈림길에 서자 저우차오는 현성은 당연히 남쪽인데 누가 산 위로 가겠느냐고 했다. 천성은 자기가 바로 그렇게 간 적 있다고 답하려다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 말을 하면 제 어리석음만 또 드러날 듯했다. 그는 밤에 눈이 내리면 누구나 한낮처럼 길이 또렷이 보이는 건 아니라고만 했다. 저우차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세상에 눈 내리는 밤마다 새 표지판을 하나씩 걸어야 한다면 사람보다 나무가 먼저 지치겠다고 했다.

저우차오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천성은 웃지 않았다. 열 걸음 남짓 차이라면 짐을 메고 되돌아가야 해도 마음에 담아 둘 일은 아닐지 몰랐다. 하지만 막상 갈림길에 서서 길을 분간할 수 없는 일은 따뜻한 물 한 그릇으로 상쇄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타오 이정의 집으로 갔다. 자기보다 말에 무게가 있는 사람에게서 확실한 답을 듣고 싶었다. 타오 이정은 마침 다른 사람과 볏짚을 나르던 중이었다. 이야기를 듣고도 우선 길목부터 비켜 달라고만 했다.

볏짚을 다 나르고 나자 노인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관도에 있던 표지판이 먼저 망가졌다고 했다. 이미 말을 전해 두었으나 언제 세우러 올지는 여전히 모른다고 했다. 새 판은 너희가 걸었으니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누구보다 너희가 잘 알 터였다. 잘못 써 놓았다고 해서 자기 성이 타오라는 이유만으로 짐꾼들 모두의 발걸음을 책임질 수는 없었다. 천성은 하는 수 없이 망치를 빌려 달라고 했다. 노인은 망치를 빌려주고 끝에 가서는 헌 못 두 개도 손에 쥐여 주었다.

갈림길로 돌아오니 저우차오의 아내가 뜨거운 물 한 대야를 들고 나오고 있었다. 물을 눈 위에 뿌리자 먼저 흰 김이 일고 뒤이어 검은 진흙이 드러났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서서 말만 하지 말고, 팻말을 어떻게 할지 못 정하겠으면 손님이 지날 곳부터 삽으로 고르라고 했다. 저우차오는 썩 내키지 않는 듯 일어났고 천성도 짧은 삽 하나를 받아 들었다. 두 사람은 좁은 도랑을 파 눈 녹은 물이 나무뿌리 곁으로 먼저 빠지게 했다. 마침내 팻말을 가게 처마 밑에서 꺼내 양쪽으로 갈 길이 다 보이는 자리에 다시 세울 수 있었다.

못은 새것이 아니었다. 망치를 처음 내리치자 비뚤게 박혔다. 저우차오는 손을 뻗어 판자를 누르며 값나가는 일만 골라 남한테 시킨다고 투덜거렸다. 천성은 얼굴이 달아올라 못을 바로 세우고 다시 망치를 내리쳤다. 문득 이 사람이 남을 해칠 생각뿐이었다면 굳이 여기 서서 자기를 도우며 망치 맞을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우차오가 표지판을 옮겨 얻는 이득은 있었고, 지금 돕는 것도 거짓은 아니었다. 일이란 밤에 개 짖는 소리 한 번 듣고 어느 집이 문을 열어 줄지 단정할 수 있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판을 바로 세우자 저우차오는 다시 집 뒤쪽을 가리키며, 정말 스커우에 갈 거라면 저쪽으로 삼 리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자기 집 작은 수레가 여러 번 오갔어도 떨어진 사람이 없다고 했다. 천성이 그쪽을 보니 조금 더 마른 비탈이 한 구간 이어지다가 대숲에 가려졌다. 쉬선이 큰길을 말해 준 것을 기억하면서도, 이번에도 큼직하게 쓰인 글씨밖에 볼 줄 모르는 사람처럼 굴기는 싫었다. 그래서 그쪽으로 조금 걸어가 보았다. 신발 밑으로 넓은 수레바퀴 자국 하나가 밟혔다.

그것은 저우씨 집에서 채소를 나르는 가벼운 수레가 남긴 바퀴 자국이었다. 수레 뒤로 긴 목재를 끌고 다니지는 않았다. 천성은 굽이 뒤까지 따라가 보지 않았다. 거기 서서 잠시 생각해 보니 바퀴 자국이 있는 이상 길이 사람을 속이지는 않으리라 여겨졌다. 돌아와 다음에 틈이 나면 자기도 한번 가 보겠다고 했다. 저우차오는 그 말을 듣고 그날 처음으로 진심으로 흡족한 기색을 보였다. 이리 와서 물이나 한 모금 마시라고, 밖에서 산허리를 또 반 바퀴 돌아가는 것보다야 낫다고 했다.

천성은 지름길을 덧써 넣지 않았다. 손에 숯도 없었고 함부로 글씨를 쓸 엄두도 나지 않았다. 자신도 그 길을 끝까지 걸어 보지 않았으니 나중에 쉬선에게 보여 주면 몇 마디를 빈틈없이 써 줄 사람이 있으리라. 그는 미처 끝내지 못한 이 일을 마음에 남겨 두었다. 내일로 미뤄도 될 자잘한 일 하나를 남겨 두듯이. 어떤 날씨에 무슨 짐을 지고서야 그 길을 지날 수 있는지는 그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찻집에 이르자 밖에 젖은 신발 한 켤레가 걸려 있었다. 그는 또 길을 잘못 든 사람이 안에서 얼어 있겠거니 싶어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서른 남짓한 종이 장수가 조금 작은 짚신을 신고 양말을 짜고 있었다. 그는 길을 잘못 든 게 아니라 돌다리를 건너다가 미끄러져 물에 빠졌다고 했다. 지금은 린씨 집에 아무도 없어 여기까지 물어 와서야 우선 좀 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아쑤이가 두고 간 신이었다. 천성은 신 가장자리에 희미하게 들어간 푸른 실을 알아보았다. 눈 내리던 밤 자신도 그처럼 두툼하고 촘촘한 신을 빌린 적이 있었다. 종이 장수에게 누가 삼았는지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자리에 없는 주인에게까지 고마워해야 할 것 같아 그저 신으면 따뜻하니 서두를 것 없다고 했다. 종이 장수가 찻집에서 따뜻한 밥 한술 사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가 부엌문을 밀어 보니 잠겨 있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각자 식은 떡을 꺼냈고, 천성은 자기 보따리에서 채소 절임을 조금 떼어 나누었다. 종이 장수는 빨리 먹어 치우고 린씨네가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앞으로도 문을 열 건지 물었다. 천성은 읍내로 갔다며, 아주머니가 아들을 따라갔고 아들은 목수로 지안 약방에 좋은 문을 하나 만들어 주고 있다고 했다. 그가 좋은 문이라고 할 때는 마치 그 문이 튼튼히 세워진 모습을 벌써 본 듯한 말투였다.

실은 그가 본 것이라곤 문 도안 한 장과 아직 톱을 대지 않은 목재 몇 개뿐이었다. 그래도 지금 좋은 문이라는 한마디조차 해 주지 않는다면, 그날 밤 빌려 얻은 온기를 마음에 새기지 않은 것만 같았다. 그는 쉬선이 젖은 나무는 쓰려 하지 않았고 어젯밤에도 목공소에서 끌날을 한참 갈았다고 덧붙였다. 종이 인형 장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이 야무진 사람은 드무니, 다음에 집에 손볼 데가 생기면 자기도 와서 물어보겠다고 했다.

천성은 가슴이 따뜻해졌다. 짐을 나르는 일 말고도 자기를 도와준 사람에게 일감을 물으러 올 손님 한 사람쯤은 보태 줄 수 있었다. 다만 그 확신에 찬 한마디를 듣는 사람들이 어디까지 직접 본 사람의 말로 받아들일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나중에 어딘가 단단하지 못한 곳이 드러나면 자기가 어느 쪽으로 물러서야 할지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지금은 종이 장수의 버선을 다 짜 놓았고, 두 사람은 찻집 문간에서 헤어져 물기 밴 낡은 물건을 각자 다시 짊어졌다.

다음 갈림길에서도 가오푸까지는 아직 한참이었다. 천성은 걷다가 형이 더 가져오라던 바늘 가는 숫돌이 생각났다. 성안에서 남의 상자를 봐주느라 바빠 사는 걸 깜빡한 것이었다. 그는 잠시 멈춰 뒤를 보았다.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어 하룻밤을 더 묵어야 했다. 주머니 속 돈은 올 때보다 줄지 않았지만, 잊은 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길 표지판 하나를 걸었다고 그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는 돌 위에 앉아 끊어진 끈을 한 바퀴 더 단단히 감았다. 돈주머니에 손을 넣자 약방에서 받은 매끈한 엽전 몇 닢이 만져졌다. 이제는 첫날 밤처럼 손만 대면 깨진 단지가 만져질까 두렵지 않았다. 손을 빼고 짐을 멜 때는 먼저 균형부터 살폈다. 가장 무거운 것을 제 어깨에 얹으려 서두르지 않았다. 저우씨네 작은 수레가 남긴 바퀴 자국이 아직 머릿속에 있었다. 가오푸에 닿으면 이제 아는 길이 하나 더 생겼다고 형에게도 말할 참이었다.

저녁 무렵 저우차오는 무 껍질을 거두고 반듯하게 세운 표지판을 지나가다 무른 흙을 발로 몇 번 밟아 보았다. 표지판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县城’(현성) 두 글자 아래 빈 곳을 보고, 나중에 자기 집에서 먹을 것을 판다는 문구를 한 줄 보태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배고픈 사람이라면 어디에 먹을 것이 있는지 알아야 할 테니 말이다. 그는 표지판을 더 옮기지 않았다. 문가의 등잔만 살짝 바깥으로 밀어 갈림길 옆에 새로 판 작은 도랑을 비추었다. 물은 누가 일을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 안을 여전히 가늘게 흘렀다.

· 이 장 끝 ·

이 책은 AI의 도움을 받아 독창적으로 집필했으며, 유장경의 《눈을 만나 부용산 주인집에 묵다》와 이 사이트의 기존 단편 《눈 오는 밤, 문을 열어 두다》를 바탕으로 확장한 작품이다. 인물과 현성, 경로와 줄거리는 모두 당나라 풍의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한 허구이며, 원시의 번역이나 시인의 전기가 아니다.

이 책의 목차 · 36 장
  1. 그 남향 방
  2. 눈이 문턱까지
  3. 세 번째 그릇
  4. 문짝이 쓰러지기 전에
  5. 갈림길의 검은 글씨
  6. 오후의 성문
  7. 마당에서 빌려 온 불
  8. 같은 값을 치른 문 한 짝
  9. 한낮에 두드리지 않은 문
  10. 돌아간 표지판
  11. 바느질 바구니 곁의 두 손
  12. 눈 녹은 물이 남쪽 벽에 스며들다
  13. 고향에 돌아와 앉을 자리
  14. 자에서 놓친 한 눈금
  15. 문 아래의 그 손
  16. 어머니가 아들을 대신해 한 말
  17. 찻집에 쌓인 문 재목
  18. 수레가 지나갈 수 없는 지름길
  19. 누구네 뒤뜰
  20. 한 짐의 물건 두 가닥 밧줄
  21. 다슈가 솥을 들고 가 버렸다
  22. 아무도 앉지 않은 그 걸상
  23. 누가 옛집을 내주겠다고 했나
  24. 새 문을 빗속에 내놓다
  25. 아직 비워 주지 않은 방
  26. 목공방에 남겨진 빗
  27. 팻말에는 누구의 이름도 없다
  28. 따뜻한 방은 약이 아니다
  29. 단오 전의 그 약속
  30. 팔지 않은 바느질 바구니
  31. 차막에 제 나름의 나날이 생겼다
  32. 산속의 그 목재 거래
  33. 누구의 손에서 받아야 할 짐인가
  34. 미리 식혀 둘 필요 없는 한 솥의 밥
  35.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 문을 고치다
  36. 해는 어디까지 기울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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