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 세태 장편소설
팻말에는 누구의 이름도 없다
쿠우지 · AI 창작 · 4558 자 · 약 12 분
회화나무 갈림길에 새잎이 채 펼쳐지기도 전에 길 표지판부터 흐려졌다. 겨울에 숯으로 쓴 글씨가 비에 씻겨 아래쪽은 반 토막만 남았으나 칭란(青岚) 두 글자는 아직도 굵고 검었다. 글을 모르는 짐꾼 하나가 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화살표를 보고 스커우 쪽으로 열 걸음쯤 갔다가 돌아왔다. 그는 저우차오에게 같은 곳을 가리키는데 왜 위쪽은 북쪽을 향하고 아래쪽은 동쪽을 향하는 것 같으냐고 물었다.
저우차오는 팻말을 돌려 보여 주며 아래 것은 화살표가 아니라 옛 못이 녹슬어 남긴 자국이라고 했다. 짐꾼은 코를 한번 만지고는 글 아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길을 더 잘도 빙빙 돌린다며 웃었다. 저우차오도 웃으며 큰길을 가리켜 주었다. 그가 멀어지기를 기다려 젖은 천으로 팻말을 한 번 닦았다. 숯 자국은 도리어 더 번져, 물을 맞아 꼬리가 축 처진 까마귀 같았다.
천성은 가오푸로 돌아가기 전에 이곳에 들렀다. 저우차오가 표지판을 닦는 것을 보고 쪼그려 앉아 아래쪽에서 거의 빠져 가는 못을 뽑았다. 가져온 바늘과 실은 이미 반이나 팔려 꾸러미 한쪽이 홀쭉했고, 물건과 바꾼 마른 대통 두 개가 매달려 있었다. 저우차오는 지난번 비 오던 밤에 찻집에 사람이 가득했느냐고 물었고, 천성은 그랬다고 했다. 저우차오는 그에게 밀국 한 그릇을 내주며 웃었다. 여기 불이 꺼지지 않았으니 다음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얘길 좀 해 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천성은 이번에는 서둘러 그러겠다고 하지 않았다. 보리국을 먹고 제값인 네 문을 냈다. 자기는 여기서 낮에 먹어 봤을 뿐, 밤에 묵게 해 줄지는 주인이 직접 답해야 한다고 했다. 저우차오는 돈을 소매 안으로 밀어 넣으며, 이제 말 한마디를 하려 해도 먼저 발을 세 번은 굴러 보고 싶어 하느냐고 타박했다. 천성은 새로 기운 신발을 내려다보며 그렇다고 했다. 디뎌 봐야 밑에 물이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두 사람은 원래 옛 표지판의 글을 다시 쓰려던 참이었다. 마침 류씨네에서 돌아오던 쉬선의 손에 쓰고 남은 얇은 판자 한 조각이 들려 있었다. 찻집에 남은 목재를 둥글게 대패질하고 남은 조각이라 폭이 너무 좁아 걸상 윗판으로는 모자랐지만, 못대가리 하나 가리기에는 알맞았다. 저우차오는 목수가 온 것을 보자 차라리 새 표지판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날마다 이 검은 까마귀를 마주 보고 이치를 따질 수는 없지 않으냐면서.
쉬선은 얇은 널을 나무 옆에 기대어 놓고, 재목이 얇아 볕을 몇 번 쬐면 휘니 큰 표지판으로는 쓸 수 없다고 했다. 원래의 판자를 자세히 보니 뒷면은 아직 괜찮아서 단단한 못 두 개만 갈면 되었다. 그는 연장 자루에서 못 하나를 찾았으나 다른 하나는 휘어 있어서 펴도 마음 놓고 쓸 수 없었다. 저우차오는 방 안을 한참 뒤져 부러진 갈퀴 하나를 찾아냈다. 갈퀴 발은 모두 쇠였다. 그는 그중 하나를 가리키며 짧게 잘라 박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이 시험해 보고 있는데 타오 이정이 산 너머에서 왔다. 발에는 진흙이 묻었고 옷자락은 걷어 올려져 있었다. 겨울에 신고한 낡은 표지판 이야기는 도로 담당 아전에게 벌써 두 번 전했다. 하지만 아전이 관할하는 것은 산 아래 큰길이었다. 회화나무 갈림길 곁의 이 구간은 가까운 마을 관할이라 언제 돌을 보충할 수 있을지는 위에 더 보고해야 했다. 그들이 모두 쪼그리고 앉은 것을 보고 또 재촉하러 온 줄 알았는지, 오늘은 자기를 따라 산을 내려온 석공이 없다며 먼저 손을 내저었다.
저우차오는 석공은 필요 없다며 허리춤의 작은 망치를 빌려 달라고 했다. 타오 이장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문가에 앉아 물을 마시며 세 사람이 부러진 갈퀴 살 하나를 두고 길다 짧다 다투는 것을 보았다. 쉬선은 거친 가장자리를 갈아 내자고 했고, 저우차오는 시간이 아깝다며 망치로 한 번 박으면 보이지도 않는다고 했다. 천성은 새 밧줄을 단단히 묶은 뒤에도 풀어서 말려야 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는 쇠로 된 갈퀴 살을 돌려주며 먼저 갈라고 하고, 자기는 그를 위해 물을 끓이겠다고 했다.
표지판을 단단히 못 박고 나서 쉬선은 뒷면에 큰길로 팔 리라고 썼다. 앞면에는 현성까지 십사 리, 린씨 집까지 사 리라는 글을 그대로 두었다. 겨울에 눈 내리던 그 밤을 다시 눈앞에서 볼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판자 위의 ‘늘 사는 사람 없음’이라는 문구만큼은 다른 글보다 더 꼭 남겨야 했다. 아쑤이는 옛집에 돌아가 지킬 생각이 없었다. 창씨네와 계절에 맞춰 묵기로 이야기가 되었어도 봄과 여름에 걸쳐 넉 달뿐이었다. 길손이 옛집의 위치를 보고는 언제나 따뜻한 불이 기다린다고 여겨서는 안 되었다.
저우차오는 표지판 가장자리에 대숲길이라는 글자를 보태자고 했다. 쉬선은 붓을 멈추고 긴 목재를 실은 수레는 지날 수 없고, 비가 온 뒤에는 땅이 물러 사람도 미끄러진다고 했다. 저우차오는 자기 집에서 날마다 물을 길을 때 그쪽으로 다닌다며, 한 발만 디뎌도 도랑에 빠질 것처럼 말해 놓으면 손님들이 앞으로 자기 집 뒤로는 다가오지도 않겠다고 했다. 그는 아궁이 위의 큰 솥을 가리켰다. 국이 아직 반 솥이나 남았지만 아침 장이 파하면 오후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천성이 쉬선 편에 서서 누구 대신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그는 저우차오에게 수레 모는 사람한테 굽이를 한번 보여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저우차오는 처음에는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러다 길 어귀에 말려 둔 땔감도 거두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문짝을 닫아 두고 집 뒤로 난 샛길을 따라 그들을 데려갔다. 대나무 비탈에 들어 굽이를 지나니 땅에 제법 깊은 바퀴 자국 두 줄이 나 있었다. 바로 쉬선 일행이 수레를 뒤로 빼다 남긴 자국이었다.
안쪽에서 작고 짧은 채소 수레 한 대가 나왔다. 수레를 모는 노인은 짐도 내리지 않고 무난히 지나와, 그들 앞에서 십 년 동안 이 길을 이렇게 다녔는데 어째서 표지판까지 달아 사람을 겁주려 하느냐고 했다. 쉬선은 지난번 자기가 걸렸던 굽이를 바라보다 문득, 같은 길이 일부러 누구의 편을 들어 증언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노인의 수레는 짐칸이 짧고 채소 바구니도 유연해 대나무에 스치며 지나갈 수 있었지만, 자기의 긴 목재는 한 치도 휘어지지 않았다.
저우차오는 그의 속내를 알아채고 입가에 조금 의기양양한 기색을 띠었다. 쉬선은 반박하지 않고 돌아가 작은 판에 바퀴 자국을 두 줄 그렸다. 한 줄은 곧게, 다른 한 줄은 굽이 바로 앞에서 끊었다. ‘긴 짐은 우회’라고도 썼다. 천성이 글을 모르는 사람은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자, 쉬선은 얇은 판자를 깎아 길고 짧은 나뭇대 두 개를 만들고 끊긴 곳에 엇갈려 놓아 가위표를 만들었다. 길이가 다른 두 나뭇대가 다리를 저는 사람 같아서 타오 이정도 보고 웃었다.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작은 나무 팻말 하나였다. 대숲길, 비 온 뒤 진입 주의라고 쓰고 옆에는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를 하나 새겼다. 긴 짐을 실은 수레는 우회하라는 문구를 따로 아래에 적고, 본길 표시는 여전히 큰길을 가리켰다. 팻말은 모든 사람의 발걸음을 대신 정해 주기보다 나무 아래 선 사람이 적어도 여기서 한번 물어볼 곳이 있다는 걸 알아보게 했다. 저우차오는 자기 집에서 파는 보릿국을 알리는 글씨를 처마에 걸었다. 이제 길 안내판 곁에 비집고 들지 않아도 되었다.
종이 짐을 멘 젊은이가 멈춰 서서 찻집에서 묵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천성은 비 오는 밤에 몸을 피한 사람은 있었지만 평소에는 차만 파니, 묵으려면 먼저 류 아주머니에게 물어야 한다고 했다. 젊은이는 조금 실망하여 저우차오에게 다시 물었다. 저우차오는 생각해 보더니 바깥 걸상에 한 사람은 비집고 누울 수 있지만, 방 안에서는 자기 아이가 자니 자리를 다 내줄 수는 없다고 했다. 젊은이는 제 걸음으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가늠하다가 결국 스커우로 계속 걸어갔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쉬선은 옛 숯 자국을 갈고 남은 작은 부스러기를 도랑 옆으로 쓸어 넣었다. 저우차오는 팻말에 목수 이름이 하나 빠졌다고 했다. 혹시 글자가 떨어지면 나중에 누구를 찾을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쉬선은 자기가 날마다 이곳을 지나지는 않으니 못이 헐거워져도 가장 먼저 보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타오 이정은 근처 두 집의 문을 천성에게 가리켜 보이며, 평소 물을 길을 때 아래쪽 못도 겸사겸사 봐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각 집에서는 자기들이 지나는 쪽 끝만 맡으면 되었다.
표지판을 살피는 이야기가 나오자 저우차오는 뒤쪽 집 개가 나뭇조각 물어 가기를 좋아하는 게 생각났다. 그는 못 쓰는 대나무 토막 하나를 더 가져다가 판자 아래 무른 진흙 자리를 메웠다. 과연 개가 달려왔다. 새로 못을 박은 판을 물어 갈 수 없자 돌아서서 천성이 바닥에 벗어 놓은 헌 짚신 한 짝을 물고 갔다. 천성이 열 걸음 넘게 뒤쫓았지만, 개는 놀아 주는 줄 알고 사람보다 더 신이 나 꼬리를 흔들었다. 결국 그 집 아이가 떡 반 장을 주고 신발을 되찾았다. 신발 끈에는 이미 젖은 이빨 자국이 두 줄 나 있었다. 사람들이 숨이 찰 만큼 웃는 사이, 천성은 신을 나뭇가지에 걸어 말리고 한쪽 발을 맨발로 둔 채 문가에 돌아와 앉았다.
한 집에서는 갈림길까지만 돌보겠다며 린씨네 샛길로는 가려 하지 않았다. 그곳까지는 오르막으로 사 리나 되었고 물 길으러 가는 길도 아니었다. 또 한 집에서는 농번기가 되면 날마다 오겠다는 보장은 못 한다고 했다. 타오 이정은 손도장을 찍으라고 다그치지 않았다. 다만 판이 쓰러진 것을 보면 뾰족한 못이 위로 향하지 않게 먼저 저우차오네 처마 밑에 놓아 달라고 했다. 저우차오는 입으로 또 자기한테 일을 떠넘긴다고 투덜대면서도 문가에 쌓인 젖은 장작 더미를 옮겨 판을 둘 자리를 비웠다.
쉬선이 연장을 챙길 때 천성이 긴 송곳은 왜 안 가져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수레 수리점에 팔았다고 했다. 천성은 아, 하고 잠깐 있다가, 예전에는 목수가 손재주만 좋으면 어디를 가든 돈을 넉넉히 벌 줄 알았다고 했다. 쉬선은 살이 갈라진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가볍게 웃었다. 손재주가 좋은지 어떤지도 결국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함께 성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천성은 가오푸로, 쉬선은 현성으로 향했다. 갈림길에서 각자 멜대의 줄과 연장 자루의 아귀를 고쳐 잡고 헤어졌다. 돌다리를 건넌 쉬선은 뒤에서 누가 달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탁자 밑에 빠뜨린 짧은 자를 들고 온 저우차오네 아이였다. 아이는 얼굴에 땀이 흥건했다. 쉬선에게 자를 쥐여 주더니 고맙다는 말을 듣기도 전에 돌아갔다.
쉬선은 두 걸음 쫓아가 자기가 먹으려고 남겨 둔 말린 살구 하나를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살구를 보았다. 주머니 구석에 얼마나 오래 눌려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받아 넣으며, 돌아가 여동생에게 맛보게 주겠다고 했다. 쉬선은 원래 이 조금의 새콤달콤함을 누구에게 남겨 주려 했는지 떠올리고 문득 얼굴이 화끈해졌다. 그래도 두 번째 설명을 하려고 다시 쫓아가지는 않았다.
그 살구를 건네고 한참 걸은 뒤에야 아침에 어머니에게 숯을 남겨 두지 않은 것이 문득 생각났다. 어머니는 요즘 작은 화분에 파를 조금 심으려 했다. 그가 자투리 나무의 단단한 귀퉁이를 태워 체에 쳐서 초목재를 만들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어스름이 내릴 무렵 길가에서 누군가 밀짚을 태우고 있었다. 그는 멈춰 서서 식은 재를 한 줌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여인은 다 탈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그는 밭두렁 곁에 쪼그려 앉아 마지막 붉은 불씨까지 어두워진 뒤에야 낡은 종이에 재를 쌌다. 시간에 맞춰 탈 수레가 없어서 걸어서 돌아갔다. 가는 내내 발밑의 흙빛이 노란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아쑤이는 삼월 초이렛날 이미 창씨네 이웃에게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안채는 철을 지내는 넉 달 동안 한 달에 사십 문으로 빌려주고, 뒤쪽 방은 셈에 넣지 않기로 했다. 안채 열쇠는 따로 싸서 보내고, 초열흘에 마부가 가져온 첫 달치 사십 문은 창 아래 옛집을 빌려주는 날짜를 적어 둔 종이 옆에 눌러 두었다. 그녀는 이 돈을 따로 두었다. 바늘과 실을 사는 작은 돈주머니에는 섞어 넣지 않고 사월 방세에 보탤 작정이었다. 남은 석 달치는 벌써 손에 들어온 돈으로 쳐서는 안 되었다.
그는 성에 돌아와 먼저 종이에 싼 식은 재를 파 화분 곁에 놓았다. 그리고 공구 가방에서 팻말을 쓰고 남은 숯 꾸러미를 꺼내 창가에 놓았다. 아쑤이는 그 낡은 천이 눈 내리던 밤 바늘을 모아 두던 천 조각임을 알아보고 팻말을 또 쓰느냐고 물었다. 그는 다 썼다고 했다. 천을 펼치자 한쪽이 숯가루로 조금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쪽만 문질러 깨끗이 하고 다른 쪽은 그대로 둔 채 앞으로 이런 더러운 것을 쌀 때는 바늘 싸는 좋은 천을 가져다 쓰지 말라고 했다. 쉬선은 알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에 묻은 흙을 털어 주었다. 손길은 한 번 한 번 가벼워졌다.
· 이 장 끝 ·
이 책은 AI의 도움을 받아 독창적으로 집필했으며, 유장경의 《눈을 만나 부용산 주인집에 묵다》와 이 사이트의 기존 단편 《눈 오는 밤, 문을 열어 두다》를 바탕으로 확장한 작품이다. 인물과 현성, 경로와 줄거리는 모두 당나라 풍의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한 허구이며, 원시의 번역이나 시인의 전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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