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 손기술·세태 장편
꽃철이 지난 뒤
쿠우지 · AI 창작 · 4626 자 · 약 12 분
창고 문을 연 날, 매화나무에는 동쪽 가지에만 꽃이 몇 송이 남았다. 다른 꽃들도 한꺼번에 진 것은 아니었다. 아직 흰빛을 조금 띤 것도 있었지만 벌써 빛이 비칠 만큼 얇아져 바람이 조금만 세도 떨어졌다. 구칭은 이른 아침에 떨어진 꽃을 모았다. 서둘러 남에게 건네지 않고 먼저 문턱 밖에 마른 천 한 장을 펴 젖은 꽃을 잠깐 말렸다. 담 너머 원씨네에서는 새 천 간판을 내걸었다. 천이 선명하게 빛나니 나무에 남은 옅은 빛은 도리어 그 북적임에 가려진 듯했다.
원지창이 사람들에게 보여 준 것은 새 문과 창고 자리, 그리고 수레가 순조롭게 드나들 수 있는지였다. 매화는 간판에 넣지 않았다. 그래도 손님 중에는 나무를 남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마당까지 한번 가 보려는 이가 꼭 있었다. 쉬탄은 사람들을 안내하다 물건 곁에 이르면 새 자루 아귀를 걸어 벌리지 않도록 소매를 여미라고 했다. 구칭은 자기 집 문틈으로 건너다보며 남들이 보는 나무와 자기가 날마다 물을 주는 나무가 꼭 같은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한 손님은 꽃을 보고 나서 너무 드문드문하다며, 차라리 활짝 핀 동백 화분을 회랑 아래 놓는 편이 낫겠다고 했다. 원지창은 그러자고 했다. 안뜰은 비워 둘 데는 비워 두어야 하고, 꽃구경을 온통 이 한 그루에 맡길 수는 없다고 했다. 담 너머로 그 말을 들은 구칭은 처음에 조금 언짢다가 이내 마음이 놓였다. 그가 나무를 남긴 일을 날마다 손님을 끌어오는 이득으로 이야기한다면, 자기도 꽃 피는 때가 맞지 않아 실망하는 사람마다 덩달아 한마디씩 사과해야 할 것 같았다.
둥시에는 명절이 지난 뒤 물건이 들어오는 속도가 해를 넘기기 전보다 느렸다. 구칭은 다 쓰지 않은 포장지를 광주리 몇 개에 나누어 담아 볕에 말린 뒤 선반에 올리려 했다. 방 안에는 자리가 부족했고 새로 반품되어 들어온 탁자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맨 바깥 광주리를 우물가 나무 단 아래에 잠시 두고 내일 아침 꺼낼 생각이었다. 그곳은 도랑 입구에서 반 뼘쯤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살펴보고 벽에 기대 장작을 쌓는 것도 아니고 종이가 진흙에 직접 닿게 한 것도 아니라고 여겨, 마음속에서 우선 스스로를 눈감아 주었다.
창고를 열기 사흘 전인 열사흘 밤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세차지는 않았지만 아침에도 여전히 내렸다. 구칭이 바구니를 살피러 가 보니 나무 받침 바깥쪽에 진흙이 잔뜩 튀어 있었다. 바구니를 더 안으로 밀고 낡은 판자로 앞을 가렸다. 방 안에서 선쑤가 조금 쉰 목소리로 더운물을 가져오라 불러, 구칭은 다시 쪼그리고 앉아 도랑을 살피지 않았다. 아침밥이 다 되었을 무렵 원씨네의 첫 쌀 수레가 이미 도착했다. 바퀴가 남문을 지나자 진흙물이 마대 모서리에서 떨어진 지푸라기를 싣고 새로 낮춘 문턱을 따라 골목으로 천천히 흘러들었다.
구칭은 창가에 서서 꽃잎을 말다가 천 아주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또 수레를 비켜달라는 줄 알았다. 손에 든 꽃잎 한 장을 내려놓고 문을 밀고 나가니, 천 아주머니가 나무 바가지로 물을 밖으로 퍼내고 있었다. 물은 두 집 담 밑에서 차올라 우물 가장자리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마른 벽돌 틈을 따라 얕게 퍼져 있었다. 구칭이 손을 넣어보자 차가워 손마디가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첫마디로 원씨네 새 문이 빗물을 모두 이쪽으로 끌어들인 것 아니냐고 물었다.
천 아주머니는 어느 집 물인지부터 묻지 말고 물을 담을 것부터 찾으라고 했다. 구칭은 방에 그릇을 가지러 갔다. 가져올수록 제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원래 이렇게 축축하지 않았는데, 문을 고치고 새 바닥을 다졌으니 당연히 물길이 바뀔 터였다. 그릇을 내려놓을 때 원지창도 와 있었다. 바짓단에 진흙이 묻었고 원씨네 뜰에서는 마대 하나의 바닥을 받쳐 올리는 중이었다. 그 역시 집 안에 편히 앉아 남이 물에 젖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상대편 쪽을 가리켰다. 원지창은 도랑이 뚫려 있다면 문턱 밖의 이만한 물이 여기 고일 리 없다고 했다. 구칭은 담을 고칠 때 모르타르 찌꺼기를 쳐 넣었는지 누가 아느냐고 했다. 그의 얼굴이 즉시 어두워지더니, 이제 막 쌓은 담까지 당장 뜯어 확인하자는 말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말을 내뱉고 나니 당장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도랑을 남겨 두기로 했으면 종이에 선 하나 그어 두는 걸로 끝낼 수는 없다고 한마디 더 했다.
뒤이어 쉬탄이 가느다란 나무 막대를 들고 왔지만, 그 말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쉬탄은 얕은 도랑에 막대를 밀어 넣다가 걸리는 곳에서 멈추고, 구칭에게 우물가의 낡은 널빤지를 먼저 들어 보라고 했다. 구칭이 널을 드는 순간, 바구니 밑에 있던 젖은 종이 한 장이 널에 붙었다가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구칭은 그걸 보고 가슴이 조금 조여 왔다. 이내 저건 맨 바깥에서 물이 튀어 젖은 한 장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막힌 곳은 더 안쪽에 있을 터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물이 이렇게 많이 고일 리가 있을까.
치워 낸 것은 과연 종이만이 아니었다. 새것과 묵은 재 찌꺼기, 마른 잎, 수레에서 떨어진 풀과 오래된 검은 진흙 조금이 뒤섞여 있었다. 물에 젖고 나니 누구도 손으로 척 들어 올려 어느 집 몫이 얼마인지 가려 낼 수 없었다. 허펑추가 도랑을 청소하라고 남겨 둔 작은 구멍이 제구실을 했다. 쉬탄은 나뭇조각을 원지창에게 건넸고, 천 아주머니는 대야를 들고 비우러 갔다. 구칭은 우물 곁에 쪼그리고 앉아 구멍 위에 떠 있는 부스러기를 한 움큼씩 걷어 냈다.
물이 차츰 밖으로 빠져나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벽돌 반쪽이 드러났다. 구칭은 소맷부리가 이미 흠뻑 젖은 채 차가운 땅에 무릎을 대고 있었다. 저쪽에서 원지창이 우선 여기까지만 뚫고 안쪽은 비가 그치면 자세히 보자고 했다. 그는 그 종잇조각이 어느 집 바구니에서 떨어졌는지 캐묻지 않았고, 그녀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다만 대야를 거두면서 자기 종이 바구니를 통째로 안아 집 안으로 들였다. 젖은 바닥이 문턱에 짙은 자국을 길게 남겼다. 아무리 봐도 반 뼘만 떨어뜨려 놓았으면 피할 수 있었을 일 같지는 않았다.
선쑤는 마른 바지를 찾아 주다가 무릎에 묻은 진흙을 만지고는 아까 왜 그리 큰 소리로 외쳤느냐고 물었다. 구칭은 우물에 물이 들어갈까 봐 그랬다고 했다. 할머니는 우물 아가리가 높아 아직 그럴 정도는 아니었다며, 걱정이 된다고 남이 한 일을 한마디로 몽땅 잘못이라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구칭은 공연히 겁낸 게 아니라고 대꾸하려 했다. 할머니의 손이 옷더미 속을 느릿느릿 더듬는 것을 보고는 젖은 바지를 받아 들고 내일 자기가 안쪽을 한 번 더 정리하겠다고만 했다.
이튿날 비가 그치자 구칭은 정말로 보러 갔다. 도랑 어귀는 겉으로 이미 깨끗했고 나무 막대를 넣어 보니 안으로 더 들어갔다. 구칭은 내일 하겠다던 일을 정말로 한가해질 때까지 미루었다. 어쨌든 당장의 물은 이미 빠졌으니까. 종이 바구니는 방 안에 남았고 재료 탁자 둘레는 더 비좁아져, 앉을 때마다 먼저 무릎을 한쪽으로 돌려야 했다. 들어오던 샤오만은 그걸 보고 겉옷을 자기 무릎 위로 옮겼다. 방 안에 왜 새로 습기가 도는지 다시 묻지는 않았다.
창고가 처음 문을 연 며칠은 온갖 사람이 드나들어 명절보다도 바빴다. 구칭은 이제 원씨네와 허물없는 이웃이 된 줄 알았다. 그런데 문가에 서 있으면 일꾼들에게 한 걸음 비켜 달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길에 짐이 있으니 일부러 푸대접하는 게 아님을 알았다. 그래도 비켜 달라는 말을 들을 때면 서쪽 시장 손님들이 어느 가게에서 왔느냐고 먼저 묻던 일이 떠올랐다. 구칭은 빈 바구니를 안고 제 마당으로 돌아왔다. 진정 자기 것인 장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전보다 더 다급해졌다.
야오랴오가 한 번 들렀다. 원씨네 여자들에게 비녀꽃 두 점을 보내 주고, 오는 길에 구칭의 새 파란 견본도 보려 했다. 매화 아래에 머무르지 않고 신발의 진흙부터 깨끗이 긁고 방으로 들어왔다. 샤오만은 옛 견본과 모양이 다른 말린 꽃잎을 만들고 있었다. 야오랴오는 그것을 집어 빛에 대고 반 바퀴 돌렸다. 이런 모양에 따뜻한 색을 쓰면 봄꽃 모임에서 머리 장식으로 잘 팔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구칭은 곧장 파란 매화에 썼던 모양이라 바꿀 수 있다며, 수량을 봐야 한다고 했다.
야오랴오는 그 자리에서 수량을 말하지 않았다. 이월에도 일을 맡을 생각이 있는지 묻고, 그럴 생각이면 며칠 뒤 자기가 견본을 가져오겠다며, 물량이 크다는 말만 듣고 덥석 승낙하지는 말라고 했다. 구칭은 샤오만이 도와주니 제때 할 수 있다고 했다. 작업대 맞은편에서 샤오만이 손에 든 실을 잠깐 멈췄다. 곧바로 반대하지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그저 방금 만든 꽃잎 한 장을 자기의 작은 종이 봉지에 따로 넣고, 이미 하기로 한 평범한 꽃잎을 계속 잘랐다.
샤오만이 가고 나서야 구칭은 새 견본 주문을 받으려면 비교할 수 있게 그 말린 꽃잎을 남겨 둬야 한다는 생각이 났다. 채 접지 못한 상자를 들고 뒤쫓아 골목 어귀에 닿았다. 샤오만은 곧장 염색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모자 테를 파는 작은 노점 앞에 서 있었다. 주인이 부드러운 모자를 하나 건네자 샤오만은 모자 옆에 달린 지나치게 반듯한 꽃을 먼저 밀어 느슨하게 한 다음, 소매에서 작은 종이 꾸러미를 꺼내 각도를 맞춰 그 위에 얹었다.
구칭의 걸음이 느려졌다. 구씨네 작업대 위에서 보았을 때는 모양을 잘못 잡고 남은 자투리 같기만 하던 그 푸른 조각이, 짙은 회색 모자 가장자리에 놓이자 미처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샤오만이 모자를 써 보았다. 느슨하게 묶였던 머리칼이 모자 아래 눌리자 얼굴 전체가 말끔해 보였고, 웃을 때도 구칭이 괜찮다고 할지 먼저 살필 필요가 없었다. 주인이 무어라 말하는 사이 샤오만이 손을 뻗어 모자챙을 조금 더 낮게 접자, 옆에 있던 여자 손님도 따라 손을 뻗어 뒤집혀 나온 비단 가장자리를 만졌다.
구칭은 문득 다가가 그 꽃잎에 대체 어느 집 재료를 썼느냐고 묻고 싶었다. 손에 든 상자에 손끝으로 눌러 자국을 냈다. 발을 떼려다 멈췄다. 시험 삼아 만들다 망친 것은 자기 몫으로 치고 정식 수량에는 넣지 않겠다고 샤오만이 이미 말했던 게 떠올랐다. 굳이 묻다 보면 애초에 분명히 정하지 않았던 사소한 일을 먼저 난처하게 만들기만 할지도 몰랐다. 구칭은 두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여자 손님이 꽃을 반대쪽으로 돌려 모자를 써 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샤오만이 자신을 알아보기를 기다리지 않고 상자를 안은 채 골목으로 돌아갔다.
작업대 앞으로 돌아온 구칭은 대야 물에 비춰 보았던 그 푸른 꽃을 다시 집어 들었다. 반 바퀴 돌려 보아도 모자 가장자리의 그 조각처럼 가뿐해 보이게 할 수 없었다. 구칭은 꽃을 뜯어 망가뜨리지 않고 제자리에 놓은 뒤, 종이 상자에 자기가 눌러 낸 자국을 손가락 끝으로 문질러 폈다. 그 자국은 끝내 다 펴지지 않았다. 구칭은 상자 밑면을 돌려 그 자국이 문을 향하지 않게 했다.
그날 오후 할머니는 바느질 탁자에 다시 앉지 않고 천 아주머니와 천을 널러 나갔다. 두 사람이 젖은 천에서 마지막 물기까지 짜내고 장대에 걸치자, 바람이 지날 때마다 골목에서 흰 문 여러 짝이 여닫히는 듯했다. 차를 내간 구칭은 천 아주머니가 할머니에게 정말 남쪽에 간다면 발이 그 길을 견딜 만하겠느냐고 묻는 것을 들었다. 선쑤는 멀리 걷지 못하면 배를 타면 되고, 물가에 닿기도 전에 지레 포기할 수는 없다고 했다. 구칭은 아직 뱃삯도 다 못 모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차만 내려놓았다.
돌아온 구칭은 파란 견본을 다시 늘어놓고 봄꽃 모임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을 골랐다. 바깥으로 말린 몇 송이는 전부 자기 손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놓으니 새 가게의 얼굴 같았다. 그녀는 흰 종이 한 장을 밑에 받쳐 ‘顾’를 써 보고, ‘青’을 절반쯤 쓰다가 꽃에 먹물이 떨어질까 봐 우선 붓을 내려놓았다. 창밖에서 할머니와 천 아주머니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웃음소리는 널어 놓은 천에 한 번 가로막혀 방 안에 아주 가볍게 내려앉았다.
정월 열여드렛날 아침, 나무의 가까운 쪽에 남았던 마지막 매화가 떨어졌다. 마침 새 담이 휘어 들어간 안쪽에 내려앉아 구씨네 마당에는 떨어지지 않았다. 선쑤는 담 너머를 잠시 바라보면서도 누구에게 주워 달라고 하지 않았다. 구칭은 할머니가 아쉬운 줄 알고 건너가 볼까 물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저쪽 꽃은 저쪽에 떨어지게 두어도 된다고 했다. 그러고는 낡은 천을 거두었다. 안에는 며칠 전 떨어진 꽃잎들이 말라 작은 꾸러미가 되어 있었다. 저마다 짙고 옅던 빛깔이 이제는 엇비슷하게 바래 있었다.
구칭은 새 담을 만져 보았다. 벽돌 표면에는 비 온 뒤의 서늘함이 조금 남아 있었다. 담은 나무에 자리를 내주느라 굽었지만, 꽃을 하루 더 머물게 해 주지는 못했다. 구칭은 아직 그 일에서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지는 못했다. 그저 방에 들어가 흰 종이에 쓰던 ‘青’ 자를 마저 쓰고, 종이를 뒤집어 야오랴오가 큰 견본을 가져오면 제 작업대 곁에 쟁반을 몇 개까지 더 놓을 수 있을지 셈하기 시작했다.
· 이 장 끝 ·
이 책은 AI의 도움을 받아 창작했으며, 왕안석의 《梅花》(매화)와 이 사이트의 기존 단편 《不卖春风》(봄바람은 팔지 않는다)을 확장한 작품입니다. 인물, 상업 활동, 지리와 연대는 모두 가상이며, 시인의 전기가 아닙니다. 나무를 지키는 일, 향기 없는 비단꽃, 할아버지와 손자가 연꽃을 바라보는 원작의 핵심 선택을 유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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